잊을 수 없는 증인

40년간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약함과 참됨에 관한 이야기

윤재윤 지음

발행
2021년 07월 23일
쪽수
276 쪽
정가
13,800원
전자책
9,660원
ISBN
979-11-6218-161-4
판형
135   x  200 mm

책 소개

 

 

삶의 본질 깊숙한 곳을 꿰뚫어보는 통찰과 

사람을 향한 겸허한 시선에 담긴 위로


사람은 한없이 연약하지만 

동시에 참답게 행동할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법이 눈물을 닦아주기는 어렵지만, 눈물의 현장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 

 

유대교 철학자 아브라함 J. 헤셸에 따르면, ‘정의(justice)’는 법, 판결과 같이 곧고 정확하며 합리적인 올바름을 의미하지만, ‘의(righteousness)’는 친절, 박애, 관용 등 인격의 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의’는 정의를 넘어 연약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눈물을 포함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다수의 권리를 보호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의 공평한 시선이 모두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한다. 법관과 변호사로 40년간 법의 현장에 있었던 저자도 수많은 재판을 경험하면서 법 제도가 ‘의’보다는 ‘정의’에 치중되어 있음을 깨닫고 회의감과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전한다. 

“무정하고 획일적인 법으로 복잡하고 깊은 인간사를 재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거친 일인가.”

법은 겉모습에만 관여할 수 있을 뿐 사건 속의 눈물은 헤아릴 수 없다. 개개인의 사정을 섬세하게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무정하고 냉혹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법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며, 법과 물리적 증거만으로 끝까지 알아내기 힘든 사람들의 눈물과 아픈 마음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왔음을 고백한다. 법이 눈물을 닦아주기는 어렵지만 눈물의 현장에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인간성에 대한 고뇌와 연민이 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잊을 수 없는 증인》은 저자가 40년간 법조인으로 일해오면서 법정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약함과 참됨에 관한 이야기다. 1999년부터 최근까지 《좋은생각》에 꾸준히 연재해온 것을 묶은 것인데,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솔직하고 깊은 성찰이 담긴 그의 이야기에 매료된 독자들이 많아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특히 법조인이기에 앞서 그 또한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재판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본인을 되돌아보고 깊이 있는 성찰로 이끌어내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하겠다. 책의 제목을 《잊을 수 없는 증인》으로 정한 것은 그 눈물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그에게 법조인으로서의 삶의 방향과 인간의 본질을 깨우쳐준 귀중한 인생의 스승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 실린 성공과 실패, 연민과 원망, 기쁨과 고통, 후회와 성장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고통과 슬픔을 넘어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력한 사람에게 연민을 가질 때에야 약하고 위태로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자기의 안락만을 목표로 삼거나 늘 자기 문제에만 골몰하는 사람은 남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갖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평생 자기 안에 갇혀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이에 대해 에리히 프롬은 “무력한 사람에게 연민을 가질 때에야 약하고 위태로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타인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복된 변화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고 연민을 가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 또한 평소 동정심이 많다고 자부하였지만 무의식중에 사람의 가치를 이분하는 모습에 깜짝 놀란 바 있다고 고백한다. 과연 갱생 가망이 없는 중증 알코올 의존자나 마약 중독자, 상습 범죄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인간의 가치가 능력이나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존엄하며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저자는 법의 현장에서 거듭 확인한다. 

“안타깝고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지만 내가 재판에 관한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본문 중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이 하나의 질문이 그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 간에 그 사람의 살아온 삶과 생각,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사람은 한없이 연약하지만, 동시에 참답게 행동할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내면에 여리고 섬세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개 높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가 인간성을 갈망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점점 흉포해지는 사회에서 고민 끝에 찾아낸 치유와 변화의 시작점


정의와 공평을 이룬다며 애써서 하는 재판이 삶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저자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가 가진 심연의 한쪽 가장자리를 스쳐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그에 대한 혼란과 끊임없이 싸웠음을 고백한다. 인간사에는 법의 저울로 잴 수 없는 일이 무수히 많음에도 저자는 그 한계에서 좌절하지 않고, 법의 틈새를 보완해줄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년자원보호자제도’와 ‘정상관계 진술서’의 양식을 만든 것이다. 소년자원보호자제도는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에게 부모 등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있어도 제대로 보살필 수 없을 때 법원이 위촉한 지역사회 봉사자들과 소년범을 일대일로 연결해주는 멘토링 서비스로, 우리나라에서 저자가 시작하여 제도화되었다. 또한 정상관계 진술서의 양식도 저자가 피고인의 보다 자세한 사정과 환경을 알기 위해 만든 것으로, ‘차가운 법의 판결’의 한계를 넘어 ‘눈물 흘리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그의 애타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은 날아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다. 이기주의, 쾌락주의가 난무하고 온갖 허무의 말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러나 점점 흉포해지는 세상에서도 저자는 변치 않는 사랑의 존재와 힘을 믿는다고 말한다. 피차 부족한 존재인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가장 밑바닥의 슬픔까지 함께할 때 변화와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주장이 어느 때보다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것은 40년간 법의 현장에서 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우리 속의 깊은 심연을 읽고자 누구보다 애쓴 성실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윤재윤

30여 년 동안 법관 생활을 하다가 춘천지방법원장을 마치고 퇴임하였다. 비행청소년을 돕는 자원보호자제도, 피고인에 대한 양형진술서제도를 창안하여 전국 법원에 시행되게 하였고, 법이 치유력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틈틈이 재판과 사람에 대한 글을 써왔다. 현재는 변호사, 한국건설법학회 회장, 대학의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철우언론법상을 수상하였고, 저서로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소소소(小素笑) 진짜 나로 사는 기쁨》 《언론 분쟁과 법》 《건설 분쟁 관계법》이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마음 — 우리 속의 신비한 심연

두 개의 돌 

자기에게 웃어주기 

굴레에서 벗어나기 

직관의 소리 

뉘른베르크 법정의 두 아버지 

거짓의 대가는 자신이 치른다 

복된 잘못 

힘을 다 쓰지 말라 

10분이 주는 자유 

사추기 소묘 

간절히, 그리고 자유롭게 

나의 외로운 취미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두 종류의 열등감 

단단한 행복 

완벽한 하루 

안락을 넘어 기쁨으로 

나는 바보야 

 

 

관계 — 나를 넘어서, 마음을 다하여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안아주는가 

12인의 성난 사람들 

무엇인가 들려오고 있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신부님의 우산 

참새 

요셉의원에서 생긴 의문 

연민의 힘 

관용이 최상의 덕이란다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사랑받아야 사랑할 수 있다 

별똥비 내리는 밤 

아이 뒤에 서기 

아버지의 마지막 온기 

 

 

눈물 —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것

나는 잘못 판단하였습니다 

눈물 흘리는 정의 

입장이 관점을 만든다 

현장은 다르다 

사건의 두 얼굴 

법적 사실과 진실 

그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사형장의 세 사람 

베토벤의 재판 

실패에서 배우라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인식은 얼마나 정확한가 

대도를 위한 변명 

후회와 자책감에 대하여 

 

 

성장 — 진실과 갈등의 깊은 숲을 지나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고난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 

잊을 수 없는 증인 

이 의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어느 피고인이 준 선물 

살아 있다 

마지막 시간 

정의의 아들, 지혜의 딸 

아름다운 벌 

자기를 넘어서는 무엇인가 

민 선생님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 

 

 

+- 더보기

책 속으로

나는 내가 실수를 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해 있다고 느끼면 무엇이 원인인지 따져본 다음에 스스로 웃어넘기면서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누가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위로할 수 있을까? 유쾌하게 웃을수록 더 자유로워진다. 자기에게 웃어주는 것이야말로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이러한 자기 존중과 유머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귀한 성품은 한번 해본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반복된 경험 속에서 서서히 생겨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실수에도 따뜻하게 웃어주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존중감과 유머를 얻는다.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 훈련을 해야 자기 자신도 같은 태도로 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 그대로 자신을 대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웃어주기> 중에서

 

사람이 잘못을 통하여 변화가 된다면 그런 잘못은 복된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실패와 잘못 또한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잘못에 얽매여 줄곧 후회하거나, 실패로 자괴감에 빠져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후회와 자책만 계속한다면 또다시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은 잘못에서 배워 제대로 사는 길뿐이다. 인생의 승패는 외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잘못과 실패의 고통, 즉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는 것 아닐까. 

-<복된 잘못> 중에서

 

자기 욕심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이들은 자기 능력 이상의 허세를 부리며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백이 전혀 없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드물지만 그와 반대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 가진 힘의 일부만 쓰고, 아는 것도 일부는 모르는 체하고, 얻을 수 있는 것도 다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마음을 비우는 허(虛)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는 인간의 부족함과 어둠을 이해하는 겸손함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만날수록 은근한 매력과 감화를 준다. 

-<힘을 다 쓰지 말라> 중에서

 

“부장님, A를 기억하시지요? 그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A는 무죄로 풀려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법정에서 더듬거리며 말하던 그의 야윈 얼굴이 떠올랐다. 인간 내부에 있는 끝 모를 심연의 어둠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토록 무죄를 주장하던 그의 간절함과 절절한 노력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를 웬만큼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재판은 사건의 껍데기만 다룬 것 같았다. 정의와 공평을 이룬다며 애써서 하는 재판이 삶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가 가진 심연의 한쪽 가장자리를 스쳐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그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