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도 새로 태어난다

스베냐 플라스푈러 & 플로리안 베르너 지음 | 장혜경 옮김

발행
2020년 06월 24일
쪽수
248 쪽
정가
14,800원
전자책
10,360원
ISBN
979-11-6218-106-5
판형
135   x  205 mm

책 소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철학적 모험이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철학자 엄마와 문예학자 아빠가 말하는 슬기로운 부모 생활

세대 간의 가치관, 경제적 여건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의미와 가족의 구성도 많이 달라졌다. 만혼, 비혼, 동거, 딩크족, 1인 가구 등 이전과는 다른 사회적 현상들이 나타남으로 인해 “결혼해서 예쁜 아기 낳아 행복하게 살자.”란 말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내용이 되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부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수많은 철학적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아이는 부부의 사랑을 더 견고하게 만들까? 아니면 대체할까? 부모가 되면 시간 인식이 어떻게 바뀔까?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성을 따라야 할까, 아빠의 성을 따라야 할까? 그 작고 연약한 존재를 품에 안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이 책의 저자는 독일에서 현재 가장 활발하고 도전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페미니스트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푈러와 그녀의 남편이자 문예학자이며 에세이 작가이기도 한 플로리안 베르너다. 두 사람은 한때 결혼이나 출산을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맞닥뜨린 철학적 고민과 도전들이 흥미롭다. 엄마와 아빠의 역할, 개인의 자아실현과 아이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 미래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이에게 거는 기대 등,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보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그들을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아이를 낳기로 막 결심한 젊은 부부나 아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이미 만나 고군분투 중인 부부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도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의 저자 스베냐와 플로리안은 자유롭게 결합된 2인 가구였다. 결혼이나 출산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들이 품은 한 생명과 설레는 여행을 시작한다.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은 그들의 실존을 밑바탕에서부터 뒤흔든다. 여성과 남성에서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된다는 것은 당장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눈앞에 들이밀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에 의지하는 작은 인간을 책임져야 하기에 예전처럼 열정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어떻게 이전과 똑같은 생활이 가능할 것인가? 지금껏 ‘정상’이라고 여겼던 일상이 뒤틀어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가치관까지 모조리 바뀔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아이를 책임지고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도전이자 도발이며,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도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당신은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인생을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당신의 미래를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가? 아이가 당신의 인생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당신의 인생을 앗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아이가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 세상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가? 아이를 통해 계속 살아갈 것이기에 인생이 덧없어도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얼마나 기막힌 착각이란 말인가! 당신의 아이는 당신과 같지 않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수유와 기저귀 갈기, 이유식 방법을 설명하는 실용서가 아니다. 하지만 부모라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시작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 부모 노릇이 무엇인지 철학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임과 자유, 두 가지를 동시에 이뤄낼 수 있을까

“아이들 없이 집을 나설 수 있기 위해 아이들이 필요하다.” 저자 스베냐 플라스푈러의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철학자의 결혼을 끔찍하게 여긴 니체의 주장에 반박하며 저자는 용감하게 선언한다.

“나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원한다. 조금 더 야심차게, 조금 더 금욕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니체가 실패했던 그 일을 해내고자 한다.”

참으로 자신만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책임과 자유, 두 가지를 손에 쥘 수는 없다는 생각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결혼과 출산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 ‘놓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자유를 역설한 것이다. 책에서 인용한 쇠렌 키르케고르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실존이야말로 자유로운 실존이며, 의무를 지지 않는 실존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최근 이슈가 된 ‘엄마 됨을 후회함(Regretting motherhood)’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구호이지만 저자는 “엄마 됨을 후회한다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라고 과감히 선언해버린다.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았던 여성들이 분개할 말이지만, 설득력이 없는 말도 아니다. 엄마가 된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고, 그 지점에서 필요한 건 한탄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선택과 도전이 아닐까. 

독일의 이 엄마, 아빠와 달리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책임과 자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책임과 자유를 용감하게 선택하고 실현해나가는 이들 부부의 슬기로운 부모 생활이 우리 사회의 부모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길 바라며, 용기를 주길 바란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스베냐 플라스푈러 & 플로리안 베르너

 

스베냐 플라스푈러(Svenja Flaßpöhler)

1975년생이며, 독일 뮌스터에서 태어났다. 뮌스터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철학 잡지(Philosophie Magazin)》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욕망과 탈진, 중독, 우울증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 저술가로서 다수의 글을 기고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볼프람 아일렌베르거, 게르트 스코벨, 위르겐 비비케와 함께 국제 철학 페스티벌 Phil.cologne의 책임을 맡고 있다. 저서 《나의 의지가 이루어지다》가 아르투어-쾨스틀러 저작상을 수상했고, 이외에 《바람직한 중독》《용서》《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힘 있는 여성》 등을 출간해 큰 주목을 받았다. 남편 플로리안 베르너와 두 아이를 기르며 베를린에 살고 있다.

 

플로리안 베르너(Florian Werner)

1971년생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영미문학과 독문학을 전공했고, 2007년 ‘랩과 묵시록’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예학자이자 작가이며,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일했다. 《가장 적게 저항하는 길》《바다오리의 지혜-우리가 동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유랑-자연과 언어의 탐색》 등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옮긴이 :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삶의 무기가 되는 심리학》 《힘 있는 여성》 《부모가 된다는 것》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숲에서 1년》 《심장이 소금 뿌린 것처럼 아플 때》 《오! 시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들어가며 | 부모가 된다는 것은 철학적 모험이다

 

1부 딸이 태어나다

 

•  시작 아이를 낳기로 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  책임과 자유 사상과 결혼, 창조와 출산, 철학과 섹스. 정말 이것들은 상호 모순인가?

•  산파술 딸이 태어나는 순간 소크라테스에 대한 나의 믿음은 흔들렸다.

•  진통 존재하는 것은 오직 통증뿐이다. 모든 상상과 모든 설명을 넘어서는 통증!

•  탯줄 자르기 몇 층짜리 케이크 위에 딸기 한 알을 올리고 칭찬받는 꼬마가 된 기분이란!

•  연민 결국 나는 아내가 견뎌야 하는 고통에서 수만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  모성애 아이에게 다가갈수록 심장이 요동친다. 이게 사랑일까? 아니면 그냥 동물적 본능일까?

•  부성애 나는 사랑에 빠졌다.

•  눈물 첫아이의 탄생이라는 기쁜 사건에 나는 왜 펑펑 울었을까?

•  유연성 우리는 최고도로 유연한 인간이 되었지만, 이 아이는 도로 물릴 수 없다.

•  사랑의 보충 아이는 사랑을 보충하지만 대체하기도 한다.

•  주체성 부모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  투명 인간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빠는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된다.

•  묵시록에 맞서다 아이의 탄생으로 인하여 우리의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  여성의 전권 아이와 엄마의 혈연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남성의 무력함 자기 성을 물려주는 것은 확실한 애정 표현도, 힘의 증거도 아니다.

•  공동사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  후회 엄마 됨을 후회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다.

•  계통 우리가 아는 계통수를 도끼로 찍어야 한다.

 

2부 아들이 태어나다

 

•  기다림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일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  기원 기원을 알 수 없기는 우주도 마찬가지다.

•  인생무상 왜 여자는 삶을 시작에서부터 생각하고 남자는 끝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일까?

•  페니스 이제 내 안에서 페니스가 자란다. 아들, 아들이다!

•  쿠겔멘쉬 지금 내 안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

•  그로테스크한 몸 그로테스크한 몸은 항상 태어나는 중이고, 스스로 또 하나의 몸을 생산한다.

•  자궁구 자궁구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탄없이!

•  변비 출산을 변비 따위와 비교하다니!

•  묻지도 않고 아무도 우리에게 묻지 않았다. 태어나고 싶은지, 아닌지.

•  시간 아이를 보면 나의 죽음도 견딜 만해진다.

•  지출 우리의 지출이 언젠가 유익한 결과를 낼 것이라는 보장도 전혀 없다.

•  책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삶이 가치가 있을지 안다는 뜻이다.

•  애칭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군.

•  망각 나의 온 관심은 오직 여기 이곳에 있다.

•  자유 나는 아이들 없이 집을 나설 수 있기 위해 아이들이 필요한 것이다.

•  식인종 이른 아침 우리는 굶주린 식인종마냥 아이의 냄새를 맡고 살을 깨물어댄다.

•  돌고 돌아 영원 같은 그 한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고 벽시계의 시곗바늘은 걸음을 멈춘다.

•  리듬 마-마, 파-파, 하나둘, 하나둘. 아기는 음악을 하기 시작한다.

•  자연적인 현상 아들이 잠에서 깼을 때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 이유는 뭘까?

•  투명 사회 우리의 사생활은 아이들의 탄생과 더불어 막을 내렸다.

•  희생 그녀는 자기 삶을 선택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  꽃이 피다 이곳에 아름다운 천국을 만들어라. 내세도, 부활도 없나니.

•  수송 수단 엄마는 아이를 수령하여 보관했다가 세상으로 내보낸다.

•  우연 모든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  이제 그만 이제 그만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 더보기

책 속으로

우리는 15년 전에 만났고 10년 전에 딸을 낳았으며 3년 전에 아들을 낳았다. 철학자와 문예학자이기에 우리 부부는 아침 식탁에서 (아이의 턱받이를 채워주고, 엉망이 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며, 떨어진 바나나를 집어 올리면서) 올바른 교육과 식생활 이야기만 나누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부모 노릇의 철학적 차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토론한다. 아이를 낳으면 부부의 사랑도 더 커질까? 아니면 아이가 부부의 사랑을 대체할까? 부모가 되면 시간 감각이 어떻게 변할까? 엄마의 주도적 역할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런 온갖 생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랐고 기록도 쌓여갔다. -<본문 8~9쪽> 중에서

 

 

다시 시작된다. 내장 저 안쪽에서, 저 멀리서 통증이 굴러온다. 가까워질수록 격렬해진다. 이제 곧 몇 초만 있으면 끔찍해질 것이다. 셋, 둘, 하나… 통증이 내 몸을 관통하며 온몸을 찢어발길 것만 같다. 내 안에 있지만 내 몸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큰 그 무엇처럼. 게다가 예리하고 뜨겁기까지 하다. 내 몸이 찢어지기 직전 통증은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커다란 비명이 되어서.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내지르는 비명이지만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통증뿐이다. 모든 것을 넘어서는, 모든 상상과 모든 설명을 넘어서는 통증! -<본문 29쪽> 중에서

 

 

병원이 가까워질수록 신경이 곤두선다. 호흡은 빨라지고 심장은 세차게 뛴다. 영롱한 감정이 열기 없는 불길처럼 명치에서 솟구치고, 차가운 불꽃이 흉곽 전체로 퍼져나간다. 뜨겁게 타오르지만 집어삼키지는 않는…. 맞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갓 태어난 딸에게 푹 빠진 것이다. 부채처럼 넓은 양쪽 귀마저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병원 현관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오래 기다렸던 데이트를 앞둔 남자마냥 너무너무 설레고 행복하다. -<본문 53쪽> 중에서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제일 친한 친구들과 척을 질지도 모른다. 아내와의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아니야. 말도 안 돼!) 번듯한 직장을 구할지도 모른다.(확률은 낮지만 어쨌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유연하고 변화 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변할 수 없다. 이 깨물어주고 싶은 작은 존재는 영원히 나의 자식이다. 몸이 커져서 깨물어주고 싶지 않다고 해도, 어느 날 내게서 등을 돌리고 연을 끓어버린다고 해도 이 아이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본문 67쪽> 중에서

 

 

그러니 이제 어쩔 것인가? 지구를 생각하면 자식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해결 방안이겠지만, 이것은 (부모가 되는 것이 행복이요,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할 의향이 있다면) 개인의 행복과 삶의 실현을 가차 없이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이 우리의 딜레마다.

이 딜레마는 또 한 가지 역설을 동반한다. 새 지구인이 탄생할 때마다 전체적으로는 지구 재앙의 속도가 빨라질지 모르지만 개인의 출산은 세계 몰락을 최대한 연기시키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자식이나 손자가 없는데 누구를 위해 환경을 지키겠는가? -<본문 86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