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시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정진아 지음 | 임상희 그림

발행
2019년 04월 15일
쪽수
192 쪽
정가
12,800원
전자책
ISBN
979-11-6218-057-0
판형
136   x  224 mm

책 소개

외로울 땐 따뜻하게, 피곤할 땐 달달하게,

답답할 땐 얼큰하게, 허기질 땐 푸짐하게 


EBS FM <詩 콘서트> 정진아 작가가

당신 마음에 차려주는 든든한 ‘시 밥상’

 

우리 인생에는 허기진 날들을 채워줄, 맛이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울컥’하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날이 있다. 이런 날이면 따끈한 호박죽 몇 숟가락을 뜨고 싶다. 일에 치여 체력도 정신도 바닥나는 날에는 푸짐한 삼계탕 한 그릇으로 위로받고 싶다. 가끔은 지독하게 외로운 날도 찾아온다. 이럴 때, 누군가가 따뜻한 집밥을 차려주면 좋겠다. 우리 인생에는 이렇게 허기진 날들을 채워줄, 맛이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맛있는 시》는 8년째 EBS FM <시(詩) 콘서트>를 집필 중인 정진아 작가가 음식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를 모아 각각의 시에 대한 단상을 함께 실은 에세이다. 저자는 방송 원고를 쓰기 위해 매일 청취자에게 들려줄 좋은 시를 찾는 과정에서 유독 음식에 관한 시에 인생의 의미가 깊게 배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달고, 짜고, 맵고, 시큼하고, 씁쓸하고, 뜨겁고, 또 차가운 음식은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 오랜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어엿한 된장이 되는 콩처럼, 우리 인생도 어른이 되기까지 길고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소금처럼 짜디짠 세상맛을 느껴봐야 하고, 고추장처럼 맵고 냉정한 순간도 겪어내야 한다. 

정진아 작가는 본격적으로 음식 시를 소개하는 요일별 코너들을 만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소개한 시와 그 외의 음식 시를 모아 그중 가장 마음을 울리는 시들로 《맛있는 시》를 구성했다. 백석의 <선우사>부터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까지, 이 책에 차려진 67편의 시들은 다양한 맛으로, 온도로, 촉감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지나간 어떤 순간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깊고 심오한 성찰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처럼 따뜻하게 마음을 안아주기도 한다.  

 

오늘은 어떤 시가 어떤 맛으로 나를 다독여줄까

《맛있는 시》는 ‘위로맛 詩’, ‘사랑맛 詩’, ‘인생맛 詩’, ‘엄마의 맛 詩’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위로맛 詩’에서는 지치고, 아프고, 괴로운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일어날 힘을 전한다. 봄날에 찾아온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댔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나희덕, <허락된 과식> 중에서)’은 피곤한 일상에도 우리에게 무한대로 전해지는 햇살이라는 축복이 있음을 말해준다.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는(허수경, <저녁 스며드네> 중에서)’ 모습은 지독한 상실감 속에서도 덤덤하게 밥을 차려 먹어야 하는 이들의 어깨를 조용히 안아준다. 

 

2장 ‘사랑맛 詩’에서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 현재진행중인 사랑이 주는 달콤함 등을 담은 시들이 실려 있다. 한때 누군가에게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다니카와 순타로,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중에서)’을 받았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잠시 떠올려 미소 짓게 하는 고마운 기억이다. 2장에서는 연인, 부부, 부모와 자녀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통해 사랑이라는 우리 삶의 핵심 맛을 맛보게 해준다. 

 

3장 ‘인생맛 詩’에서는 간장, 소금, 설탕, 된장, 고추장 등 우리 음식의 기본 원재료를 소재로 한 시를 통해 인생의 기본이 되는 맛을 찾고자 했다. 오랜 시간의 숙성이 필요한 간장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우리 인생을 보여주고, 소금의 짠맛은 가난에 눈물 흘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설탕의 단맛은 바쁘고 정신없는 삶 속에서 잠깐 누리는 달달한 휴식의 맛을 닮았다. 고추장의 알알한 맛은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냉정한 세상의 맛을 닮아 있다. 짜고 맵고 쓴 게 인생의 맛이지만, 정진아 작가는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다정한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4장 ‘엄마의 맛 詩’에서는 엄마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이 쓰디써 엄마 손에 남은 건 쓴맛뿐인(성미정, <엄마의 김치가 오래도 썼다> 중에서)’ 엄마. 엄마가 되고 나서야 저자는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딸은 엄마에게 너무 늦게서야 고맙고, 너무 늦게서야 미안한 마음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 외로움, 그리움으로 뒤척이는 밤이면 우리는 우리 인생을 닮은 시에게 위로를 청할 수 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을 수 있고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시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정진아

문단에 나온 지 30여 년, 방송 작가 경력은 30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2012년 2월부터 EBS FM 〈시 콘서트〉의 방송 원고를 쓰면서 매일 아침 시를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힘들고 아플 때,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이 좋은 시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다. 동시 〈겨울에 햇빛은〉 외 2편으로 《아동문학평론》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동시집 《난 내가 참 좋아》 《엄마보다 이쁜 아이》 《힘내라 참외 싹》 《정진아 동시선집》 등이 있고 , 옛이야기 그림책 《빤짝빤짝 꾀돌이 막둥이》를 펴냈다. 지금도 〈시 콘서트〉의 원고를 집 필하며 틈틈이 동시와 동화를 쓰고 있다. 시 〈참 힘센 말〉과 〈가을볕〉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린이 : 임상희

세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3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오랫동안 ‘사라져가는 달동네 풍경’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천착했으며, 거칠고 평범한 풍경 속에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다. 한일 크리에이터 교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현대모비스 신문 광고 제작, KDB생명 달력 제작, 라이나생명 달력 제작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였다.



목차

작가의 말

 

1장 위로맛 詩 - 토닥토닥, 너만 그런 거 아니야

허락된 과식 · 나희덕 / 저녁 스며드네 · 허수경 / 만찬晩餐 · 함민복 / 비빔밥, 이 맛 · 권영상

통영의 봄은 맛있다 · 배한봉 / 진미 생태찌개 · 고두현 /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 혼자 먹는 밥 · 임영조 / 풋앵두 · 정진아 / 삼학년 · 박성우 /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마다 · 용혜원 / 선우사膳友辭 ―함주시초咸州詩抄 4 · 백석 / 그래서 · 김소연 / 숟가락은 숟가락이지 · 박혜선 / 꽃밥 · 엄재국 / 라면의 힘 · 정진아 / 짜장면을 먹으며 · 정호승 

 

2장 사랑맛 詩 - 사랑한다, 사랑한다, 나 너를

콩밥 먹다가 ―딸아이에게 · 정다혜 /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순타로 / 복숭아 · 강기원 / 적막한 식욕 · 박목월 / 비에 정드는 시간 · 신현림 / 비굴 레시피 · 안현미 /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 이제니 / 평상이 있는 국숫집 · 문태준 / 설렁탕과 로맨스 · 정끝별 / 봄비 · 박형준 / 포도밭으로 오는 저녁 · 김선우 / 평양냉면 · 신동호 / 밀가루 반죽 · 한미영 / 물맛 · 장석남 / 한솥밥 · 문성해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3장 인생맛 詩 - 간장, 소금, 설탕, 된장, 고추장, 인생의 기본 맛

어떤 항아리 · 나희덕 /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 최치언

항아리 속 된장처럼 · 이재무 / 가을 햇볕 · 안도현 / 된장찌개 · 이재무 / 순대국밥집 · 나태주

두부 · 서윤규 / 식탁 · 이성복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 잡초비빔밥 · 고진하 / 호박죽 · 이창수 / 밥 한 그릇 ― 항암치료 · 조향미 / 멍게 또는 우렁쉥이 · 정두리 / 김밥 싸야지요 · 박노해 / 감자의 맛 · 이해인 /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 김밥 한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 손택수 / 

밥 · 천양희

 

4장 엄마의 맛 詩 - 그리움이 피어오르는 시간

흰죽 · 고영민 / 굴전 · 한복선 / 함박눈 · 이정하 / 고향집 먼 마을엔 싸락눈이 내리고 · 우미자

적경寂境 · 백석 / 미역 · 신혜정 / 잔치국수 한 그릇은 · 김종해 / 엄마의 김치가 오래도 썼다 · 성미정 / 엉뚱한 생일 선물 · 강인석 / 그게 비빔밥이라고 본다 · 윤성학 / 김치찌개 · 한순 / 연금술 · 이문재 / 팥칼국수를 먹으며 · 이준관 / 보리밥 · 조재도 / 어느 저녁 때 ·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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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가끔, 쓸쓸할 때 꺼내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입니다. 밋밋하고 소박한 흰죽은 오래 아팠다가 막 기운을 차리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아픈 딸을 위해 또는 아들을 염려하며 늙은 어머니가 오래오래, 세상의 좋은 기운을 죄다 끌어 모아서 끓인 것 같은 맑은 시를 읽으니, 마음 한 켠에 수액처럼 눈물이 차오릅니다. 아, 우리는 여직 사랑받고 있구나……. 잊었던 그 사랑을 느끼며 다시 살아갈 힘을 냅니다. 헛헛하고 외로울 때마다 꺼내 드세요. 위로와 사랑의 흰죽.(<흰죽> 중에서)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겠지요. 씨앗처럼 작은 생명으로 세상에 와서는 한 시절 줄기를 뻗고 잎을 틔우고 활짝 꽃을 피웁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마른 장작처럼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기도 하겠지요. 삶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주는 꽃밥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곁에 있는 사람에게 실망해서 마음에 시린 바람이 불고 있다면 꽃불로 끓여낸 가마솥 꽃밥을 먹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밥알 하나하나에 고인 뜨거움이 마음에 부는 시린 바람을 다사로운 훈풍으로 바꿔줄 거예요. (<꽃밥> 중에서)

 

결혼 생활은 한마디로 밀가루 반죽이었습니다. 어쩌자고 시작했을까요? 하얗고 부드럽고, 후― 불면 날아가는 고운 밀가루로 살지, 동그란 스텐 그릇에는 왜 뛰어들었을까요? 물이 부어진 후 뒤섞여 하나가 된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던 거겠지요. 고운 가루가 한 덩이 반죽으로 완성되기까지 울기도 많이 울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고함을 지르던 날도 셀 수 없습니다. 그 시간들로 팍팍 치대 완성한 말랑말랑한 반죽. 자, 이제 어떡할까요? 국수를 삶을까요? 빵을 구울까요? (<밀가루 반죽> 중에서)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던 식탁 위도 마찬가지겠지요. 따뜻하고 정겨운 자리였지만 다 먹고 떠나고 난 후에는 밥 찌꺼기와 설거짓거리만 남습니다. 누군가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식탁 위를 깨끗하게 치우겠죠.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지금은 한창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언젠가 소리 없이 치워질 거라고요. 그래요. 살다 보면 별자리 성성하고 꿈자리 뒤숭숭한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옵니다. 그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길이에요. 다만, 그날이 나를 찾아오는 날,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식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