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춤토르 분위기

건축적 환경 · 주변의 사물

페터 춤토르 지음 | 장택수 옮김

발행
2013년 10월 31일
쪽수
76 쪽
정가
22,000원
전자책
ISBN
978-89-5937-345-1
판형
170   x  235 mm

책 소개

스위스가 낳은 위대한 건축가 페터 춤토르

2009년,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페터 춤토르의 수상은 다소 뜻밖이었다. 렘 쿨하스, 자하 하디드, 리처드 로저스, 장 누벨 등 이전 수상자들에 비해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것도 아니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그 영역을 자랑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터 춤토르는 스위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 할덴슈타인에서 20여 명의 직원들과 일하는 은둔자형 건축가이다. 그러나 건축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노장이 추구하는 건축의 독창성과 깊이를 인정했기에 프리츠커상 수상을 크게 환영했다. 건축의 본질을 꾸준히 연구한 구도자로서, 치열한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예술가로서 춤토르는 ‘강인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감을 지닌 건축’을 대지 위에 올려놓았다. 크고 위압적인 건축으로 경관을 압도하기보다는 경관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겸손하고 소박한 건축물을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의 첫인상 : 분위기를 말하다

페터 춤토르의 건축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언제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품고 대지 위에 올려진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 숨을 쉬고 생명력을 발하며 그만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페터 춤토르가 건축 설계를 할 때 ‘분위기’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분위기’가 없는 건물은 아무런 감동이 없다. 페터 춤토르의 작업 방식이 작가와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춤토르는 새로운 작업을 맡으면 무엇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서 그곳의 온기를 피부로 느끼고 그곳에서 전하는 소리를 귀담아듣는다. 그러면 장소가 원하는 구조와 재료가 떠오른다고 한다. 주변의 모든 것과 교감하고 상상하는 작가의 작업과 일치한다.

  

“나는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새로운 일과 씨름하는 데 어떤 경험을 불러올 수 있을지 생각한다. 책을 쓰듯 일단 생각을 시작하면 건축 소재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가만히 지켜본다. 나는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떠오르기 때문이다.”

  

춤토르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멋을 부리지도 않고, 기술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본연에 충실한 깊이 있는 공간을 설계하기에 오히려 준엄하고 격조 있는 느낌을 준다. 춤토르는 자신의 건축 작품과 저서를 통해 건축적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건축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건축적 존재의 역할은 무엇인가? 건축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건축물이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영감이 있는가? 춤토르는 이 모든 답을 건축물만 별도로 떼어놓고 찾기보다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 주변 환경, 경관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건축물이 세워지는 현지의 재료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재료들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또한 그 장소의 역사와 흔적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위기는 나의 스타일이다

‘분위기’는 춤토르가 줄곧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연구한 주제이다. 2003년 6월 1일 독일 문학·음악 축제에서 춤토르가 했던 강연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춤토르의 건축에서 분위기가 맡고 있는 역할과 의미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춤토르에게 분위기는 미학적 범주에 속한다. 춤토르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영국의 천재화가 윌리엄 터너가 비평가 존 러스킨에게 보낸 편지에 쓰인 짧은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분위기는 나의 스타일이다.”

 

터너는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는 풍경 자체의 분위기를 중시한 화가였다. 그러나 당시 터너의 그림은 많은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터너의 그림을 이해하고 그의 천재적 재능에 대한 찬사를 보낸 유일한 비평가가 바로 존 러스킨이다. 춤토르는 터너의 말을 인용하며 그 자신도 건축을 하는 데 있어 분위기에 얼마나 중점을 두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건축의 질이란, 적어도 나에게는, 건축 가이드북이나 건축사에 누군가의 건축이 포함되거나 내 작품이 출판물에 수록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 질 높은 건축은 나를 감동시키는 건물이다. 무엇이 나를 감동시키는가? 어떻게 그 감동을 작업에 적용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 사진과 같은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중략)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분위기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생각해 보자. 나는 첫인상을 믿지 말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보니 다시 첫인상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다.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건물에 들어가서 실내를 보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본문 11~13쪽)

 

춤토르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깨달은 아홉 가지 사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건물을 설계하면서 사물을 다루는 방식이나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에 대해서 정리한 것이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건물의 분위기는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소리나 몸이 감지하는 온도, 습도, 감각, 주변 사물과의 조화 등이 모두 공간의 분위기를 인지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한다. 더불어 책 후반부에는 ‘환경으로서의 건축’, ‘일관성’, ‘아름다운 형태’ 등 그를 감동시키는 주제들을 덧붙이고 있다. 

 

춤토르의 표현은 명확하면서도 지극히 시적이다. 건축에 대한 그의 열정과 단호함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주제들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노장이 오랜 경험으로 터득하고 지금도 고집스럽게 강조하고 지향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춤토르는 건축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부단한 수고와 노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구도자가 되고, 때로는 은둔자가 되고, 때로는 타협 없는 고집쟁이가 되기도 한다. 몰입과 열정, 오감을 넘어서는 감각, 그 지역의 특성을 인정하고 북돋우는 그의 건축물을 보는 일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미 건축학도나 인문학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책이지만, 이번에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한국의 인문 독자들과 건축학도, 건축 전문가들에게 소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페터 춤토르
1943년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 아버지가 운영하던 목공소에서 가구공 훈련. 바젤 공예학교에서 디자이너 과정 수학,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건축 과정 수학, 1979년에 스위스 할덴슈타인에서 건축사무소 개설, 2009년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
1986년 스위스 쿠어 로마 유적 발굴 보호관
1988년 스위스 숨비츠 성베네딕트 교회
1993년 스위스 쿠어 마산스 노인 요양시설
1996년 스위스 발스 온천
1997년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독일 공포의 지형 박물관 일부 시공(재정 문제로 2004년에 철거)
2000년 독일 하노버 엑스포 스위스관, 스위스 사운드박스
2007년 독일 쾰른 콜룸바 뮤지엄, 독일 바겐도르프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
2009년 스위스 발스, 아내 아날리사와 페터 춤토르를 위한 라이스 목조 주택인 운터후스와 오버후스

감수 : 박창현
부산대학교 미술대학과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주)건축사사무소 SAAI의 공동대표를 거쳐 지금은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와 (주)에이라운드 건축 대표를 맡고 있다. 2009년 <SKMS 연구소>로 건축가협회상을 공동수상하였으며, <나무 282>, <아틀리에 나무생각>, <아웅산 순국사절 기념비> 등의 작업을 통해 건축적 담론을 펼쳐나가고 있다.

옮긴이 : 장택수
아주대학교 건축학과와 한동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 및 국제회의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광장》 《나는 희망을 던진다》 《세상을 가슴 뛰게 할 교회》 《처음처럼 예배하라》 《영을 분별하는 그리스도인》 《나는 하나님을 아는가》 《예수 선언》 등이 있다.

목차

분위기|실체의 마법|건축의 몸|물질의 양립성|공간의 소리|공간의 온도|주변의 사물|안정과 유혹 사이|내부와 외부의 긴장|친밀함의 수준|사물을 비추는 빛|환경으로서의 건축|일관성|아름다운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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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건축의 몸

나에게 건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장기와 물질로 구성되어 피부로 덮인 인간의 몸과 비슷하다. 건축을 생각하면 몸이 떠오른다. 몸을 가진 매스인 건축은 멤브레인, 패브릭, 외피, 천, 벨벳, 실크, 내 주변의 모든 것으로 구성된다. 건축의 몸! 몸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몸 그 자체. 나를 감동시킬 수 있는 몸!(본문 21~23쪽)

 

물질의 양립성

물질은 서로 반응하고 빛을 발산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혼합물은 독특한 성질을 지닌다. 물질은 무한하다. 돌을 보자. 우리는 돌을 자르고 갈고 뚫고 쪼개고 광을 낼 수 있다. 매번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소량이나 대량으로 같은 돌을 다시 택하여 작업하면 또 다른 것이 만들어진다. 돌을 빛에 가져가면 또 다른 결과를 얻는다. 하나의 물질 속에 수천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런 일이 좋다. 하면 할수록 더욱 신비로운 일. 우리는 이 물질과 다른 물질을 섞으면 어떻게 될지를 머릿속에서 상상한다.(본문 25쪽)

 

안정과 유혹 사이

건축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시간예술이다. 건물 내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나는 작업할 때 여러 지점들을 고려한다. 온천 프로젝트로 설명하겠다.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거닐 수 있는 환경, 지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유혹하는 분위기,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병원의 복도는 사람들에게 지시한다. 그와 달리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걷게 만드는, 부드럽게 유혹하는 기술은 건축가의 몫이다.(본문 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