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니에의 시보다 아름다운 예수전

장 바니에(Jean Vanier) 지음 | 이현주 옮김

발행
2013년 02월 01일
쪽수
272 쪽
정가
12,800원
전자책
8,900원
ISBN
978-89-5937-312-3
판형
115   x  184 mm

책 소개

평화, 사랑, 진실을 찾아, 예수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사복음서로 읽은 장 바니에의 ‘사랑의 선물 예수’


나에게 예수는 그의 가르침이나 말을 무턱대고 믿어야 할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그가 가르친 대로 살아봐서 그의 진실이 저절로 믿어져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거나
아니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까닭에 포기하고 등져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장 바니에가 내게 이토록 절친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머리 아닌 몸으로, 논리 아닌 삶으로,
예수와 그의 가르침이 진실임을 입증해 보이려는 기본 자세 때문일 것이다.
-이현주 목사의 <역자 후기> 중에서


예수와 함께 걷고, 예수처럼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가난한 이들의 온유한 연인, 예수 이야기


가장 낮은 곳에서 가난하고 부서진 이들과 함께한 예수의 길을 따라, 지적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 예수가 살고 사랑하고 말씀하였듯이, 그렇게 실제로 살고 사랑하고 말하고자 한 사람. 프랑스 라르슈 공동체의 설립자이자 가톨릭 철학자 장 바니에가, 그가 흠모하고 닮고자 하는 이, 예수의 생애를 그린 책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장 바니에의 시보다 아름다운 예수전》은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사복음서의 내용을 하나로 통합하여 정리하되, 장 바니에 자신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거름이 되어준 복음서를 그 자신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삶으로 읽은 것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당시 유대 사회의 배경, 사람 몸으로 되신 ‘말씀’인 예수의 탄생 그리고 아파하고 억눌리고 절망한 사람들 곁에 머물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살아나기까지, 예수가 누구이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시보다 아름다운 저술로 담아냈다.
버림받고 배척당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긍휼의 사람 예수, 온유한 연인이자 치유자인 예수의 모습이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진다. 많은 저서와 번역서로 독자들과 사색과 묵상을 나누어온 이현주 목사가 담백하고 꾸밈없는 우리말로 번역했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뜨거운 맨가슴으로 쓴 예수전

장 바니에는 그의 예수전이 성서학자의 논문이나 박학한 역사가의 글이 아니라, “예수의 추종자로 살고자 한 나의 성숙과 미숙에 의하여, 자신의 삶에 의하여 잉태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삼십 년 세월, 나는 여러 장애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라르슈에서 살았다. 그들은 약하고 무력하지만 놀랍도록 개방적이고 서로를 신뢰한다. 예수는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러 오신 분이다.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은 누가 뭐래도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다. 진실로 복음서는 그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예수에 대하여, 그가 누구며, 그의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떻게 아이처럼 그분에게 마음을 열어드릴 것인지 그 방법에 대하여,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머리말> 중에서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빛과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뜨거운 맨가슴으로 쓴 예수전이 여기에 있다.
그에게 예수는 2천여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역사적 예수인 동시에 “오늘 우리 중심에 살아 있는 예수”이기도 하다. 예수는 바로 지금 여기,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 가슴에, 우리 모두 안에서 떨고 있는 외로운 아이의 가슴에 살아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가 하느님 안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1요한 2)라는 요한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음서가 있는 것은 그분이 오늘 우리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살아 계시다는 믿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오늘 이 부서진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치고자 거기 있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내게 와서 마시라”고 한 예수의 말처럼, 거짓과 위선에 물들고 물신에 얽매인 오늘의 우리들 가슴에 맑고 시원한 샘물처럼 청량한 감동을 선사해주는 책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장 바니에(Jean Vanier)
가톨릭 철학자 ․ 신학자이며, 지적장애인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이 삶을 나누는 ‘라르슈(L'Arche)’ 공동체의 설립자이다.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경계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장 바니에는 1928년 캐나다 총독 조지 바니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4년 토머스 필리페 신부를 통해 지적장애를 지닌 두 남자, 라파엘과 필리페를 만나게 된 그는 삭막한 수용시설에 갇혀 생활하는 지적장애인의 현실에 눈을 뜨고 그들을 데려가 프랑스 트로슬리-브뢰유의 작은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이것이 라르슈의 시작이다. 프랑스어로 ‘방주’라는 뜻의 라르슈 공동체는 현재 전 세계에 150여 개의 커뮤니티가 있는 국제적인 기구로 성장했다. 또한 1971년 마리 엘렌 마티유와 함께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과 그 부모, 친구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운동인 ‘믿음과 빛(Faith and Light)’을 설립했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 《인간 되기》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희망의 사람들 라르슈》 등이 있다.

옮긴이 : 이현주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났고,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 동화 작가, 번역가이기도 한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 《바보 온달》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육촌 형》 등의 동화와 《대학 중용 읽기》 《길에서 주운 생각들》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 《예수의 죽음》 《지금도 쓸쓸하냐》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라》 《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보는 것마다 당신》 등을 썼으며, 무위당 장일순 성생의 《노자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는 데 산파역을 맡았다. 역서로는 《티베트 명상법》 《배움의 도》《바가바드 기타》 《예언자들》 외 다수가 있다.

목차

머리말

1. 배경
2. 예수
3. 넘어뜨리고 일으키시는 예수
4. 고통과 초라함 속으로 내려가는 예수
5. 살아나신 예수
6. 마치는 말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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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 배경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은 걸인, 나병환자, 불구자, 장애인들을 그들이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경멸하였다. 하느님으로부터 잘려진 불순하고 더럽고 악한 자들로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거룩한 성전에는 그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은혜도 입지 못하고 가치도 없는 그들은 온갖 천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자연히 그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살아 있는 것 자체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분노로 치를 떨며 신음하였다. 혹은 정신병으로 도망치고 자기에 대한 절망과 혐오로 몸부림쳤다. 그들은 자신의 이 생과 다음 생에 아무런 희망이 없고 오직 저주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2. 예수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인간의 언어가,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오히려 손상시킬 만큼, 제한된 것임을 본다. 하느님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다. 그분은 두 성을 모두 초월하신다.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독단적인 존재들이다. 우리의 언어는 현실의 경험에서 나온다. 그 언어가 가리키는 진실에 닿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는 감정과 고통의 자물통에 채워져 있다. 하느님은 우리의 유한하고 부서지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아버지들과 같은 아버지가 아니시다. 실제로 우리 아버지들은 하느님 아버지와 정반대일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진정한 아버지의 모습 곧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게 도와주는 하나의 표시(標示, sign)임을 깨달을 때까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예수의 ‘아버지’는 근원이시다. 

 

3. 넘어뜨리고 일으키시는 예수 

예수에 걸려 넘어진 자들은 그분이 너무나 급진적인 이상주의자요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 자들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 재물을 가난한 자들과 나눈단 말인가? 어떻게 사람이 폭력을 쓰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사람이 원수를 사랑한단 말인가? 어떻게 사람이 용서하고 또 용서한단 말인가? 어떻게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된단 말인가? 어떻게 사람이 그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단 말인가? 묻고 또 묻고,머리로 이해하고자 한 자들은 기다리기를 거절하였다. 그분의 가르침과 방식에 동의할 수 없는 자들은 믿고 따르기를 거절하고 돌아서서 떠나갔다. 

 

4. 고통과 초라함 속으로 내려가는 예수  

그분이 당신 나라에 오셨지만 당신 백성은 자기들이 기대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드럽게 용서하는 사랑, 어린아이처럼 되라는 조용한 권면,나약하게만 보이는 비폭력, 꼴찌 자리를 차지하라는 가르침은 단단한 시멘트 벙커와도 같은 권력 체제에 의하여 난폭하게 밀쳐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로 마주하는 양극이 있다. 사랑과 부드러움과 진실을 호소하는 순결한 어린아이가 이쪽에 있고, 분노, 거짓, 교만, 편견, 증오, 어둠,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옳다는 확신으로 무장된 체제에 갇혀 있으면서 돌처럼 굳어진 가슴의 어른들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저쪽에 있다. 

 

5. 살아나신 예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그동안 하느님의 영이 흐르지 못하게 막고 있던 장벽들을 허물어뜨렸다. 드디어 수문이 열렸다. 하느님의 영,예수의 영이 곧장 사람들 가슴속에 들어오시고거기를 당신 거처로 만드신다. 성령의 은총으로 두려움과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바야흐로 경계와 문화를 넘어서로 손을 잡고서 모든 민족, 모든 인종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된다. 

 

6. 마치는 말 

강하고 넉넉한 자에게는 남들이 필요 없다. 그는 자기만으로 충분하다.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는 남들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우리에게 힘을 넣어주려고 우리의 굳어진 가슴을 녹이고, 자신의 약함을 보호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감추려고 쌓아놓았던 장벽들과 방어기제들을 무너뜨리려고, 말씀이 몸이 되고 나약함이 되셨다. 존재의 중심에서 우리를 만져주고, 우리 안에 깊숙이 잠재된 힘을 일깨워사랑과 자비로 살아나게 하시려고, 그분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