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발터, 아주 특별한 인생을 만나다

발터 로트실드 지음 | 강주헌 옮김

발행
2009년 04월 20일
쪽수
288 쪽
정가
12,000원
전자책
ISBN
978-89-5937-166-2
판형
148   x  210 mm

책 소개

세상이 바뀌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에 대한 28가지 이야기

인생은 그 자체로 여러 모양새를 지니고 있고, 매일 새로운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웃는 얼굴이었다가 금세 슬픈 얼굴로 변하기도 하고, 기쁜 얼굴이었다가도 세상 모두를 잃은 듯한 절망적인 얼굴로 찾아오기도 한다. 영국의 작은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란 저자는 ‘랍비’라는 특수한 운명으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고 홀로코스트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결국 우리와 똑같은 유약한 인간들이다. 우리와 똑같이 환상을 품고, 옛 기억에 매몰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평범하고, 또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아픔이 깊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기도 한다.이 책은 서로 사랑하고 때론 상처 주고 상처 받고 용서하고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28편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에 근거한다.

 

“내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다시 정리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이고, 어떤 이야기는 내 경험이나 동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란 점에서는 ‘혼합물’이다.”(서문 중에서) 

“그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세자르 프랑크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혼돈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전혀 간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어쩌면 인생은 그렇게 쉽게 정의해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추천사 중에서)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또 때로는 한바탕 웃을 수 있는 28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인생에 대한 특별한 교훈을 주려고 쓰인 책이 아니다. 그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따뜻하고 신비로운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랍비 발터 로트실드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는 결코 변하지 있는 진리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있음을 발견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 담백하고 꾸밈없는 글이 감동과 여운으로 다가온다. 

 

“책은 읽을 때마다 감동과 여운이 다르다. 같은 책이라도 여름에 읽었을 때 감동과 여운이 다르고 겨울에 읽었을 때 감동과 여운이 다르다. 스무 살에 읽었을 때 감동과 여운이 다르고 서른 살에 읽었을 때 감동과 여운이 다르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몇 번이고 이 책을 곱씹어 보면 어느 순간, 심안과 영안이 개안된 그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추천사 중에서)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발터 로트실드
1954년 영국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런던의 랍비 전문 양성 기관인 레오 벡 칼리지(Leo Baeck College)에서 랍비 수업을 받았다. 이후 랍비로서 영국 여러 도시와 독일 베를린,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 활동했으며,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화를 위한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패널로 참여했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기를 즐기는 그는 최근 기찻길의 역사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옮긴이 :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브장송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언어학을 강의했으며,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권력에 맞선 이성》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등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과 《유럽사 산책》 《문명의 붕괴》 《월든》 《습관의 힘》 《어제까지의 세계》 《12가지 인생의 법칙》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등이 있다.


목차

1. 삶
성인식을 치른 노인 | 헤티의 아이들 | 자유 | 셈이 밝은 사람

2. 죽음
섣부른 판단 | 연기로 올라가다 | 다시 얻은 생명 | 메시아가 오실 때

3. 믿음
욕실의 목소리 | 무언의 설교자 | 다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 악령은 있다 | 모세 라베누

4. 사랑
루츠 | 빨간 머리 | 사랑을 잃은 아널드 | 하늘이 맺어준 모니카와 찰스 | 삶과 사랑에 대한 잭의 철학

5. 희망
삶은 끝없이 계속된다 | 곰인형의 진실 | 국유치 우편

6. 놀라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무기수 | 우편엽서 | 과거는 과거 너머에 있다 | 발가벗은 진실

7. 기억
헬라의 패 | 그래서 그는 정원 일을 싫어했다 | 인간이라는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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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모두 헤티가 지어낸 이야기예요. 헤티에게 자식은 없었어요.”
“하지만 사진은 뭡니까? 사진이 무척 많았는데!”
줄리가 코웃음을 웃었다.
“랍비님, 그 사진들을 자세히 보셨나요? 모두 카탈로그에서 오려낸 거예요. 멋지기는 했지요. 그래요, 헤티는 그 사진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나도 친목회 일로 헤티의 집에 갈 때마다 그 사진들을 봐야 했어요. 하지만 잡지와 카탈로그에서 오려낸 사진이란 걸 금세 알아봤어요.
헤티는 정말 그 사진 속의 사람들과 함께 살았어요. 해가 갈수록 그 사진 속의 사람들도 나이를 먹었지요. 헤티는 갓난아기 사진부터 시작해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까지 모았어요. 그 사진 속의 사람을 아들로 삼았고, 딸로 삼았어요. 심지어 부모까지요. 그리고 모든 사진을 액자에 곱게 간직했고,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꾸몄어요. 그들이 어떻게 자랐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요. 헤티가 감기에 걸리면 그들도 감기에 걸렸어요. 헤티가 휴가를 떠나면 그들도 휴가를 떠났고요. 한마디로, 헤티는 지난 20여 년 동안 꿈의 세계에서 살았던 거예요. 그 사진들과 함께.”
나는 벽난로 선반과 창문 아래 탁자에 놓인 사진들을 생각하자 어안이 벙벙했다.
“로즈메리와 마이클, 저스틴, 사만다…… 모두가 그렇단 말입니까?”
― 〈헤티의 아이들〉 가운데


“그러니까 엽서가 계속 왔다는 뜻입니까? 지금도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엽서들을 대강 살펴보았습니다. 이디시 어로 쓰여, 제게는 낙서일 뿐이었습니다. 날짜도 적혀 있지 않고요. 하지만 풀럼의 숙박소로 배달된 엽서들이 있었고, 버밍엄으로 배달된 엽서들도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배달된 엽서도 많았고요. 깨끗한 우표가 붙은 엽서, 옛날 우표, 영국 우표, 심지어 십진법이 도입되기 전의 우표가 붙은 엽서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때로는 두 번까지 아버지는 엽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장례식 이후로는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우리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싸늘한 전율마저 밀려왔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엽서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1950년대 우표가 붙은 엽서가 있었다. 왜 내가 그걸 보지 못했을까? 나는 엽서에 쓰인 글을 읽는 데만 치중했지, 소인을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마침내 내가 물었다.
“그래서 내게 이 엽서를 가져온 겁니까? 혹시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손가방을 집어 들더니 가방 속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커다란 갈색 봉투를 꺼냈다. 봉투의 덮개를 열고는 내 책상 위에서 흔들었다. 우편엽서 하나가 떨어졌다. 나는 그 엽서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앞면은 흔하디흔한 풍경 사진이었고, 뒷면에는 우표 위에 흐릿한 소인이 찍혀 있었다. 영어로 쓰인 편지글이 있었다. 검은 잉크로 쓴 듯했다. 나는 편지글을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네 엄마와 나는 잘 지낸다…….”
― 〈우편엽서〉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