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집쟁이들

박종인 지음

발행
2008년 02월 01일
쪽수
264 쪽
정가
12,000원
전자책
ISBN
978-89-5937-145-7
판형
154   x  225 mm

책 소개

한국출판인회의 3월 ‘이달의 책’ 선정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3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선정

대한출판문화협회 2월 ‘거실을 서재로’ 선정


고집쟁이들의 고귀한 마음을 배운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 80년이 다 되도록 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3대째 이발사를 해온 사람, 평생 기다란 집게를 갖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팔도에서 버려진 돌들을 주워다 건물을 짓는 사람, 연 만드는 데 일평생을 바치고, 서울 한복판에서 50년째 대장간을 하는 사람, 수십 년간 대구에서 고전음악감상실을 운영 중인 사람. 정치 경제 사회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또 변화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 자리에서 태어나 싹이 트고 열매를 맺고 또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는 사람들. 그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경지에 다다랐지만 그러한 자신을 자랑하거나 드러내지도 않는다. ‘사명감’ 그런 거 없이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같은 양과 질의 노력이라면 더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이들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인내와 열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었으며 결국 그 고집으로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는 이런 사람들을 만났고 ‘박종인의 인물기행’에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리고 《한국의 고집쟁이들》에 그 글들을 모았다. “대지에 거대하고 깊은 뿌리를 박아놓은 사람”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외길을 꾸준히 걷다 보니 어느새 그 길에 관한 한 이 우주에서 최고로 귀한 지혜와 가치를 소유하게 된 사람들” 이들을 만나면서 저자는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은 진리와 지혜를 배웠다고 한다. “고단한 시대에 이들이 감내하고 만들어낸 삶”이 고귀해서, “그들이 겪어왔을 가시밭길을 상상하니 도저히 따라해 볼 엄두가 나지 않고, 그 형극의 길을 헤치고 큰 울림과 함께 터뜨린 열매를 보니 경외와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주류이기를 거부하고 자기 길을 고집해서 살며 열매를 맺고 하늘로 훨훨 날게 된 고집쟁이 23명에 대한 기록이다. 그들의 삶만큼 고귀한 자연을 담은 사진이 함께하고 있다. 

 

소리 없이 세상을 밝히는 삶의 기록 

200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산 채규철의 이야기는 이기적이고 편안한 삶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당시 똥통학교로 불렸던 풀무학교를 만들고, 자동차사고로 불에 타서 온몸이 일그러졌지만 ‘청십자운동’과 간질환자 진료사업모임인 ‘장미회’를 이끌면서 평생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산 그는 별명이 ET였다.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라는 뜻.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소나기 30분’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인생의 소나기 먹구름 뒤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태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농부 김광덕은 평생 집게를 갖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명언이다. “자기 자식 잘되길 바라지 마라. 자식이 좀 모자라거나 실수를 해도 잘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제대로 만드는 게 더 쉽다. 그게 자식 잘되게 하는 길이다.” 그는 어렵게 일해 장만한 논밭이 10억대로 뛰자 그 땅에 농원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자연학습장을 제공하고 있다.구두장이 남궁정부는 사고로 오른쪽 팔을 잃었다. 하나 있는 왼손으로 장애우를 위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신발을 만들고 있다.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히말라야를 등반한 후 그가 다짐했다. “우리 모두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라고.근이영양증으로 움직일 수도, 밥을 씹을 수도 없는 시한부 청년 시인 김민식은 “하늘이 부르는 날까지 그저 제 할 일 하며 살 것”이라고 하며 시를 쓰고 작곡을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천직이었던 사람들 

전통 연 복원과 체계를 세우는 데 한 세기를 바친 연 할아버지 노유상. 그 긴 세월이 아까워 손자가 그 일을 이어받고 있다. 외할아버지부터 3대째 한 자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남열. 자리를 한 번도 옮기지 않았지만 주소는 세 번이나 바뀌었다. 한 사람당 한 시간씩, 하루에 딱 열 명만 깎아주고 그럭저럭 산다는 그는 “삼십 년 지나니까 면도기랑 가위 ‘날’이 뭔지 알겠던데, 지금은 그 연장 가는 법 좀 배운 거 같아요”라고 말한다. 신라시대 ‘밀랍 주조기법’으로 종을 복원하고 있는 종장 원광식. 그는 종을 만들다 쇳물이 눈에 들어가 한쪽 눈을 잃었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주철장이며 국내 유일의 종장이 되었다. 요즘 “한국의 명장, 당신의 마음을 배우겠습니다”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TV 광고의 주인공이다. 또한 조선 백자 재현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서 최고 명장이라는 말을 듣는 사기장 한상구도 수많은 실패와 고심 끝에 ‘흙에서 그릇이 나오는 원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엿장수 윤팔도는 평생 갈고닦은 엿불림으로 에서 인기상을 받았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엿장수가 되어 엿장수 사업을 시작했다. 그 외에도 독일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인 구영갑,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 어마어마하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화석 운석 등 희귀한 보물을 모아 박물관을 만든 천영덕, 멍딩이마을에서 짚공예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경씨 5인방 등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걸어 결국 대가를 이룬 사람들이다.빚더미만 짊어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된장장수가 된 이정림,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귀가 있어 음악을 한다는 이소영, 그리고 오지 비수구미 마을 사람들. 그들의 삶에는 포기가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지금 세상에서 인정받고 있다. 명분들, 이데올로기들이 난무한 세상이었지만 그들에겐 오로지 행으로서의 행, 삶으로서의 삶을 살 뿐이었다. 가슴 묵직하게, 때론 눈두덩이 후끈해지는, 중심 가득한 이들의 이야기가 손끝에서 놓아지지 않는 이유는 소모품처럼 시대의 도구로 전락한 삶이 아니라, 광대무변의 우주에 점 하나 찍는, 점안식의 공력 때문이리라. 힘주어 말하건대, 고 채규철 선생의 말대로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망한 꿈은 아닌”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박종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조선일보> 기자로 사회에 나왔다. <조선일보>에서 ‘여행’을 맡으며 세상을 돌아다니다, 2003년 사진 배우러 뉴질랜드 가서 2년 살았다. 2005년 신문사로 돌아와 주말섹션인 <주말매거진+2>를 맡다가 사회부로 가서 좋은 사람들 만나며 <박종인의 인물기행> 연재했다. 현재 조선일보 영상뉴스취재팀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인도 기행에세이 《나마스떼》, 국내여행안내서 《다섯 가지 지독한 여행 이야기》, 철학 에세이 《길 위에서 만난 노자老子》, 역서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제3세계 아동문제를 다룬 공저《아워아시아》 등이 있고, 사진전 (2004, 뉴질랜드 오클랜드), <不二 Be in One>(2005, 서울 가나포럼스페이스)을 열었다.

목차

프롤로그
1. 세상을 밝히는 불씨 한 자락
불꽃처럼 살다 간 채규철
철학자 농부 김광덕
세상에서 하나뿐인 구두를 만드는 남궁정부
시한부 청년 시인 김민식
영통사 사장 혜관

2. 스스로 선택한 천직
연 할아버지 노유상
성우이용원 이발사 이남열
고전음악감상실 하이마트 김순희
엿장수 윤팔도·윤일권
형제대장간 유상준·유상남
종장 원광식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 구영갑

3. 세상이 뭐라 해도 그 길을 가리라
수집벽에 걸린 박물관 관장 천영덕
산이 좋아 산에 사는 이대실
애꾸눈 도공 한상구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
식물원 만든 한의사 이환용
멍딩이마을 경씨 5인방

4. 희망이 있어 아름다운 삶
된장장수 이정림
돌집 짓는 사내 여정수
희망을 연주하는 이소영
골드키위 농장 정기동
비수구미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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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김순희는 그제서야 왜 아버지가 주말마다 자기를 감상실에 묶어뒀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로 딸은 매일 아침 감상실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음악을 틀었다. 장비를 손보고, 카탈로그를 보면서 새 음반을 주문하고, 손님이 오면 해설을 했다. 손님 없는 날이 더 많았다.“그 해 추석날 하루 집에서 쉬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요. 얼어봤더니 학생 때 감상실에 오다가 외지로 나간 사람들이었어요. 추석이라고 고향에 돌아와서 하이마트를 찾아왔는데, 문을 닫으면 어떡하냐는 거예요.” 그날 이후 김순희는 외국은커녕 대구 바깥으로도 나가본 적이 없다. -<고전음악감상실 하이마트 김순희>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쇠를 만지기 시작했어요. 열두 살이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집에서 기르는 소의 편자를 잘 만드셨어요. 그리고 조기 옆에 모래내대장간이라고 있는데, 그 집 주인이 우리 옆집에 살았어요. 쇠 두드리는 게 하도 재미나게 보여서 가르쳐달라고 졸랐지요. 그랬더니 풀무질부터 하라고 하대요. 풀무질하면서 졸다가 불길 못 맞춘다고 엄청 맞기도 했어요. 그게 근 40년이 지나버렸네요. -<형제대장간 유상준 유상남> 중에서 

 

어느 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로 곤궁해졌을 때,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십시일반으로 모은 3천만 원짜리 통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당신 없으면 우리가 걷지를 못하니, 당신은 꼭 돈을 벌어라” 하며 막무가내로 통장을 내밀더라고 했다. 그 모든 신발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 오직 한 켤레밖에 없는 신발들이었다. 손바닥에 한 켤레가 오롯이 들어가는 작은 신발도 있었고, 겉보기에는 신발 형태로 보이지 않는 자루 같은 신발도 있었다. 왼팔로 만든 우주에 단 하나뿐인 신발이 자그마치 5만 켤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구두를 만드는 남궁정부> 중에서